왜 항상 검은 옷을 입으시죠? - 안톤 체홉, 〈갈매기〉
금요일 화! 수! 금! 저녁! 주 3회! 연재 지옥에 떨어진 서점지기들은 분신술을 써서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한 사람은 연재할 글을 쓰고 한 사람은 연극 연습을 하고 한 사람은 밀린 이메일을 마저 쓰고 한 사람은 책 주문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시켜 서점의 나머지 일을 하도록 진두지휘하는 동안 최후의 한 사람은 카운터에 앉아 손님을 맞이하기로 했다. 서점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먹을 것을 좋아하는 서점지기들이 이웃한 식당에서 평소보다 유달리 맛있어진 햄버거 패티를 먹게 된 사연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패티를 구운 사람은 일을 갓 시작한 신비로운 직원이었으며 그 직원과 똑닮은 사람이 바로 패티를 구워야 할 시간에 서점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합당한 책을 보여주시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전사 혹은 수도사 혹은 저승사자처럼 보이는 그 사람이 서점 문을 열자마자 카운터로 다가왔다. 그의 가슴 언저리엔 'R.O.K'라고 써 있었고 망토 자락에서 앞치마가 언뜻 비치는 것도 같았다. 단순히 모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수상한 검은 투구를 쓴 그가 근엄한 자세로 합당한 책을 보여달라기에, 소설을 뜻하냐고 했더니 "아니오, 자기 계발 같은"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카운터의 서점지기는 난처해졌다.
자기 계발서는 없습니다 그럼 소설도 괜찮소
카운터의 서점지기는 죽은 작가들이 쓴 불멸의 명작들이 있는 서가로 그를 데려갔다. 그는 시간이 없는지 초조하게 망토를 만지작거리며 흘러내린 투구를 한 손으로 받쳐 들더니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저 사실 옆집에서 일하는데 틈틈이 읽을 만한 걸루
일하는 데 틈틈이 읽을 만한 소설! 무엇이 합당했을까? 하필 그날 카운터를 담당하던 자의 순발력과 대처력이 평소보다 뛰어나지 않았던 것이 다른 서점지기들에게는 다소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물론 어떤 서점지기의 숙취는 전날 나타난 거룩한 분이 날려 버렸지만 분신술의 한계로 이날 카운터에 앉아있던 서점지기에게는 아직 한 방울의 숙취가 남아 있었다는 말도 있다.) 유난히 생각이 많았던 서점지기의 머릿속에 뒤늦게 소설이 아닌 책들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틈틈이 읽기 좋은 초단편SF 선집을 그 순간 추천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부디 그 이웃이 재미있게 읽어주기를 바라노니.... 검은 옷의 이웃은 짧은 휴식시간을 서점에서 보내고는 구입한 책을 옆에 끼고 조용히 서점 문을 통과하여 옆집이 있는 방향으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 모든 것이 한낮의 꿈 같았기에 '합당한 책'을 찾던 사람이 실제로 왔던 것인지, 그가 새로 온 직원과 닮았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최근 버거집의 패티와 감자튀김이 유난히 맛있어졌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서점지기들은 입을 모아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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