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독자 여러분들은 우리 서점에 당도했던 '문학의 미래'를 잠시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십대 중반으로 믿기 어려운 격조 높은 문체, 문단을 위협하는 탁월하고도 자유로운 정신의 문집으로 서점지기와 서점 손님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던 중학교 고전부원들 말이다. 어느 새 봄이 지나 우리의 흥분은 가라앉았고, 중학생이었던 전직 고전부원들은 고등학생들이 되어 이제 입시 지옥이라 불리는 새로운 지옥 혹은 연옥을 지나야만 했다. (La Diginda Comedia!) 따라서 독자 여러분이 잊어버릴 만도 한 것이, 문학의 찬란한 미래는 여전히 미래에, 불운한 현재는 현재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한 인정 많은 미래의 작가가 스쳐가는 희망의 형태로 토요일 현재의 서점에 잠시 머물다 갔을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생활은 어떻습니까?
좋았습니다. 중간고사를 보기 전까지는.
서점지기들은 한달음에 모두 달려나와 환영의 말과 함께 시원한 러시아 홍차를 대접했으며, 작가는 미래에서 와서 그런지 막 서른 살이라는 루비콘 강을 건너자마자 도로 학생이 되어버린 『페르디두르케』의 주인공처럼 첫 중간고사를 마친 소회를 밝혔다. 선생들은 죄다 거짓말쟁이입니다. 연휴를 앞두고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는듯, 즐거웠던 중학교 시절과 함께 이곳을 찾아왔던 동무들을 떠올리며 서가를 둘러보던 미래의 작가는 어떤 만화책을 들고 카운터에 다가와 문의하였다
이 책 1권은 없나요
아이구 죄송해요. 지금 재고가 없는데 곧 들어옵니다
서점의 '곧'은 연휴가 끝난 후, 즉 며칠 뒤를 의미했다. 평일에는 대개 다음날 책이 들어오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연휴나 주말을 앞둔 상황이다. 가뜩이나 양탄자의 거인과 바로드림 군단, 샛별 배송 골렘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하필 1권이...
아! 비망록의 서점지기가 항상 난처해한다고 웃고 있는 독자들이여! 당신들에게 우리의 민망함과 난감함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배포 큰 미래의 작가께서 그 만화책의 1권을 제외한 나머지 전 권을 가지고 카운터에 왔다는 감개무량함을 전하는 편이 낫겠다. 미래의 작가는 대체 얼마나 먼 과거로 온 건지 모르겠지만 최면술과 연금술에 관한 책도 샀으며, "이 책을 재미있게 보실 겁니다."라며 좀비의 인권을 다룬 책을 빌려주었다. 서점지기 중 한 강아지가 습진 때문에 앞발을 심하게 핥아대는 것을 다른 서점지기가 말리는 것을 보고 미래의 작가는 "저 때문에 괜히 마일로가 혼이 나는 것 같군요. 마일로 선생님, 부디 건강히 계십시오."라고 정중히 인사를 한 뒤에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