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모험담에는... 👽작은 회사의 개발자로 일하던 그는 갈수록 영혼이 텅 비어간다고 느꼈다
도냐 키히데와 건초 판사의 비망록
제 6장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어떤 요일
작은 회사의 개발자로 일하던 그는 갈수록 영혼이 텅 비어간다고 느꼈다. 새로운 개발 트렌드를 따라가기도 벅찼고 개발을 모르는 대표는 그가 하기엔 적절치 않은 일도 그가 할 수 있는 개발 업무로 여기고 일을 맡겼다. 안과 의사에게 허리가 부러진 환자를 치료할 것을 명령하는 셈이었다. 반면 개발팀장은 개발 트렌드는 고사하고 20년 전 개발 방식을 고수했으며 버전 관리도 배포 자동화도 하지 않고 서버의 파일을 직접 수정하는 고대의 개발자였다. 다시 말해 아궁이에 불만 때우면 되는데 뭣하러 전기밥솥 사용법을 배워야 하느냐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팀장이 다 못 팬 장작은 그가 마저 패야 했다. 이 IT 스타트업에는 운동비와 도서구입비가 제공되었으나 여태 아무도 사용한 적이 없다. 야근으로 지쳐가는 그는 아무런 운동도 등록할 엄두를 못 내었고 대표가 사주고 싶어하는 책은 스티브 잡스 자서전 같은 것이었다. 점심은 얼마 안 되는 전 직원이 함께 먹었으며 본래 1인 창업자를 위한 공유 오피스의 일부였던 그들의 사무실은 책상과 의자 다섯 쌍이 들어가면 겨우 자기 자리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IT 스타트업답게 점심 시간이나 휴식 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일을 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졌다. 팀장은 게임을 했고 그는 자극적인 뉴스나 찾아보았지만 말이다. 시력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모험을 하기로 했다. 점심 시간에 독서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사업가나 개발자가 쓴 것이 아니라 시인이 쓴 책을 말이다. 그는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한 다음 비좁은 사무실 자기 자리에서 시집을 꺼내와 공용 공간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공용 공간에는 때로 환갑이 다 된 옆 사무실 대표가 비슷한 나이대의 남녀를 데려와서 커피 믹스를 태워주며 농짓거리를 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가 읽기 시작한 책이 페르난두 페소아의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였다. 그는 자신의 영혼도 얼마든지 많다고 느꼈고 수많은 이름을 만들어냈다. 점심 시간이 끝나가면 포르투갈의 어느 초원이나 항구를 바라보는 대신 강남대로의 바쁜 사람들을 내려다 보아야 했지만 한 곳을 향해 가는 차들이 양떼로 변신하고 빽빽한 건물들이 완전히 평평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어느 때고 그는 퇴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아직은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