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그것도 목요일임에도 마포구 염리동 일대는 월차 반차 휴가를 내고 온 이들로 아침부터 유례 없이 북적였다. 서울디자인고등학교 사거리 횡단보도에서부터 효창공원 너머까지 곰브로비치를 읽겠다는 사람들로 행렬이 길게 늘어서는 바람에 그날 오후 주민센터와 구청에는 민원이 빗발쳤다는 소식이 전해질 정도였다. 소식을 전한 사람은 급히 처리해야 할 다른 민원거리가 있었지만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선량한 시민으로, 그야말로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다. 공지된 책의 수록작은 총 세 편. 가까운 성당의 종탑에서 종치기가 종을 세 번 치자, 뻐꾸기 시계의 뻐꾸기 목각인형처럼 서점극장 담당자가 커튼 안쪽에서 튀어나와 낭독회의 시작을 큰소리로 알렸다.
오늘의 낭독작을 발표합니다.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오페레타〉!
외마디 비명이 들리더니, 누군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서점극장 밖으로 후다닥 뛰쳐 나갔다. 무슨 일이래요? 글쎄, 저이는 〈이보나 공주, 부르군드의 공주〉나 〈결혼식〉을 읽을 줄 알고 그 두 작품만 맹렬히 연습했다는구려! "자, 여러분. 진정하세요. 이제 한 분씩 순서대로 낭독을 진행하겠습니다."
진행자들이 상황을 수습했고, 곧 목요낭독회가 진행되었다. 치열한 경쟁을 순식간에 뚫고 선발된 손님들의 본격 낭독이 시작되었다.
"브와디스와프, 내 왼쪽 소매흘 바호잡고 오흔쪽 어깨 아래흘 긁어줘. 금방 나올까?"
프랑스어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프랑스어 R 발음을 흉내내는 폴란드 백작을 이렇게 잘 소화할 수 있단 말인가! 프랑스어를 배운 사람도 배운 적 없는 사람도 모두 그 '흐' 발음에 감탄하고 자지러졌다. 그러자 이에 맞서 남작이 큰 소리로 외쳤다.
"하, 하, 하, 샤름은 정말 샤름이군! 어유, 어유, 어유, 샤름, 칫, 칫, 칫, 샤름!"
소리의 신비함을 문자로 받아적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모른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카드도 없는데도 정말 손에 쥔 카드패를 던지듯이 소리를 쳤고 낭독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노름꾼이 되어 가는 광경에 경악했다. 이들 뿐이 아니었다. 낭독을 훔쳐보겠다고 일부러 대사가 적은 역할을 선점한 인물, 공주, 패션계의 거장, 몰래 잠입한 혁명가 전부 놀라운 연기를 펼쳤다. 오로지 으스대던 서점지기들만이 맥을 못추고 비틀거렸다. 코러스가 입을 모아 합창했다. 오 거장! 오 거장! 오 거장!
〈오페레타〉를 낭독한 1시간이 1분 1초처럼 흘렀다. 진행자가 인터미션을 알렸다.
관객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일주일 간 인터미션이 있겠습니다. 2막은 일주일 뒤에 재개됩니다
고작 1막을 읽었을 뿐인데도 저 위대한 폴란드 문학의 모더니스트 비톨트 곰브로비치가 부린 웃음의 마술에 우리 '배우'들이 몹시 열연한 나머지 관객들은 한참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날 이후 서점극장에서는 한동안 책을 사러 드나드는 이들 사이에서 리을을 히읗으로 발음하는 이상한 병이 유행했다고 한다.
한편, 이에 관해서는 또 다른 후일담이 전해진다. 낭독이 끝나자 무대를 휘저었던 배우들은 마법이 풀린 사람들처럼 몹시 부끄러워 하며 서둘러 서점에서 퇴장했는데, 손님으로 가장하여 문밖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들의 공연을 엿본 어떤 거장만이 감흥에 젖어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훗날 그가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뒤에도 사석에서 여러 번 회고하기를, 서점극장 하블레의 목요낭독회에서 보았던 전설의 히딩만큼이나 흥겨운 〈오페헤타〉는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 일화는 그의 저 유명한 일기의 첫 줄에도 암시되는데 "목요일, 나"가 "목요일, (목요낭독회흘 지켜본) 나"흘 뜻한다는 사실은 이미 퐇한드 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선 암묵적으로 공인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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