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펼치자 고이즈미 준이치라는 청년이 나타났다. 때는 메이지 시대, 장소는 도쿄. 막 상경한 티가 나는 인물이 시바히카게초의 숙소를 나와 한 손에는 도쿄 지도를 들고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신바시 정거장에서 우에노행 전차를 탄다. 스다초에서 무사히 전차를 갈아타 혼고산초메에서 내려 오이와케 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네즈 신사 앞 비탈길 위에 있는 하숙집에 도착한다. 오이시 선생을 찾아가는 길이란다. 오이시 선생이라니. 맛있는 사람인가? 찾아보니 大石이다. 오이시 선생이란 작자가 이 소설에서 일종의 대마 역할을 하려나? 그런 적당한 기대를 품고 책장을 계속 넘긴다. 전 일본 총리와 성과 이름이 비슷한 주인공은 여러모로 『산시로』를 떠올리게 하는 도련님으로 빵 걱정은 안해도 되니 소설을 쓰겠다고 나불거린다. 도쿄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소설에서 본 말투를 흉내낸다는 표현이 재밌다. 그는 독자이고 몽상가이자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자신의 언어를 찾는 청년이다. 그 앞에서 오이시 선생은 소설이니 시니 재능이니 하는 공론을 늘어놓는다. 괴테의 소설에서 곧잘 나올 법한 구도인데 그보다는 메이지 시대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시공간의 세부가 재밌다. 무엇을 먹었는지, 읽었는지, 봤는지, 어디를 가는지.
그런데 이 청년은 뜻밖에도 그 시절에 프랑스에서 직접 책을 받아보고 있다. 머무는 숙소 책상 위엔 프랑스 잡지가 있고, 중학교 때 영어를 외국어로 배웠지만 성공회 신부 집을 드나들며 프랑스어도 배웠단다. 1년 정도 다니다보니 어느새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신부에게 파리의 서점을 소개받는다. 서점에서 매번 발송하는 카탈로그를 보고 신간을 바로 구해 읽는다. 작가인 모리 오가이 역시 독일에서 출간된 신간들을 한 달 내로 바로 구해서 읽었다던데, 서점을 하는 입장에서는 당시 유통망과 책값이 궁금해진다.
그 사이 삼인조 손님들이 왔다 갔다. 책을 읽고 싶어, 그런데 얇고 가벼운 책이면 좋겠어. 그래야 지하철에서 부담없이 읽을 테니까. 손님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속 웃는다. 웃음소리와 수다가 서점에서 울려 퍼진다. 그동안 소설 속 인물들은 입센과 마테를링크에 대해 떠들고 있다. 여긴 이제 칠월인데 소설의 시간은 시월에서 십일월 말로 넘어갔다. 우리의 주인공은 유라쿠자에서 자유극단이 상연할 입센의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 공연이 시대 사조상 중대한 사건이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오, 이건 일본 소설이네."
삼인조 손님들 중 한 사람이 서점지기가 읽던 소설과 똑같은 책을 집어들었다. 모리 오가이의 『청년』.
"일본 소설은 지명이나 이름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아서 통 못읽겠어. 낯설단 말이야."
"일본 소설보다 더한 게 러시아 소설인 걸."
"러시아 소설? 왜?"
"러시아 소설 속 인물들은 이름이 더 길잖아. 그런데 그 이름이 심지어 비슷비슷해. 전부 다 이반이거나 표트르거나 안나야."
그래, 그래. 일본 소설도 못 읽겠고 러시아 소설도 못 읽겠다. 맞장구를 치던 손님들이 카운터를 지나서 안쪽 서가로 들어갔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여긴 고전이 많나봐. 생각보다 서점이 넓네."
"이런 걸 어떻게 언제 읽지?"
그 사이 백 년 전 세계에서 주인공은 동시대 연극으로 대표되는 입센을 셰익스피어와 괴테와 비교하며 비평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나 괴테는 아무리 훌륭하게 연기한다고 해도, 그 나름대로 괜찮기는 하겠지만 지금의 청년에게 통절한 느낌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통절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어쩌면 그런 클래식한, 하이카이의 이념처럼 한때의 유행이 아닌 영원불변의 작품을 음미할 여유가 대다수의 청년에게는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만약 셰익스피어 같은 작품이 새롭게 나온다면 그것을 희곡drama이 아니라 연극theatre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 운문조차 장황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괴테도 그렇다. 파우스트가 신작으로 나온다면 청년들은 뭐라고 할까? 2부는 고사하고 1부조차 상징이 아닌 비유allegorie라고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근래의 사실적인 강한 자극에 익숙해진 혀로는 100년 전의 차분하고 깊은 맛은 음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고전적인.....
"난 이 책으로 할래. 한 권으로 왠지 여러 권 읽는 기분을 내기 좋은 책일 것 같아."
"14000원입니다. 북커버 필요하세요?'
"네, 해주세요. 색은... 오렌지."
손님들이 떠나고 소설로 복귀한다. 이제 준이치는 연극을 보고 있다. 1막이 끝났다. 그 사이에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와 신간 매대를 둘러본다. 주인공은 이제 소설 뒷표지에 간추려진 줄거리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을 만났다. 사카이 부인이라는 사람이다. 극장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은 어쩐지 프루스트의 스완 부인과 마르셀의 만남이 겹쳐지는데, 잠시 책을 덮고 살펴보니 「청년」(1910)의 발표가 프루스트의 대하소설보다 훨씬 앞선다. 모리 오가이의 소설에서는 사카이 부인의 죽은 남편이 주인공과 동향인이라는 사실이 제법 중요하게 작용할 것 같다. 말과 이념이 작동하는 방식, 서구문화와 문학에 대한 비평을 지방 청년의 눈으로 그려낸다는 점이 흥미로운 소설이다. 물론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책 자랑, 책 자랑, 책 자랑, .... 작가와 연극, 사상에 관한 논평들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었다면 준이치가 오무라 선생과 밥을 먹는 장면에서 필경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 쌀은 어디 쌀이었는지, 차와 다과는 무엇을 곁들였는지 언급되었을 텐데 모리 오가이의 소설에서는 그저 '밥을 먹었다'는 문장이 전부다. 대신 책과 작가 이름은 아주 세세히 나열된다. 이들은 밥 대신 사상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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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퀴즈 적립금 1894원 사용하여 17606원입니다."
"최근 신간 정보는 서점 인스타그램으로 파악하고 있어요.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가 잠시 내렸다 그쳤다. 매미가 운다. 이제 소설 속 인물들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를 비평하고 있다. 다들 말을 참 잘하는구먼... 더 이상 손님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고, 서점지기의 책장이 계속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