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이 통 읽히지 않는다고 투덜투덜대던 것을 누군가 엿듣기라도 한 모양인지, 재밌는 신간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종이의 밀실’에서 벌어지는 연애 소동극! 『금각사』의 ‘미시마 유키오’가 선보이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소설! 처음엔 무슨 서간문 쓰기 교습서인가 생각했는데 저 혼자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닌지 그날 신간 매대를 들여다 보던 손님들 중 몇몇이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편지를 잘 썼나보죠? 아니면 연애에 일가견에 있다든지.”
개인적으로 띠지에 적힌 ‘종이의 밀실’이라는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맞아요, 세상 천지에 종이보다 완벽한 밀실이 어딨겠어요. 소설엔 다섯 인물이 등장하고, 교대로 편지를 써가며 일종의 미스터리 연애 소동극을 벌입니다. 편지로만 이뤄진 소설이지요! 편지들은 앞선 편지를 반박하고 뒤집고 속이고 배반하고 뒤엎으며 고백합니다. 서로를 귀여워 하는 인물들이 잔뜩 나옵니다. 아, 이거야말로 미시마 유키오 전문 영역 아닌가요.
”미시마가 여성잡지에 연재한 소설들에 대한 평가는 그가 사비를 들여 조직한 우익 민병조직 '방패회'의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쓴 대중소설 정도로 취급하는 평론이 대다수를 점한다. 그러나 미시마가 쓴 모든 중•장편 소설 중 3분의 1이 여성잡지에 연재 되었음을 고려할 때, 이를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은 작가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이제껏 미시마 연구 자체가 남성 중심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시사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그렇지요, 작가의 이미지를 재조형하는 것도 독자와 연구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사연인지 책에 실리지 않고 QR 코드로 격리된 '옮긴이의 편지'를 정독하다가 미시마 유키오를 이르는 말 중에 '사후에 성장하는 작가'라는 표현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더 생각해 볼 거리입니다. 어쨌거나 모처럼 첫눈에 재밌는 소설을 보니 괜시리 불안해집니다. 아! 하루만에 다 팔려버리면 어떡하지요? 한 스무 부씩 주문할 걸. 온 거리가 한파로 꽁꽁 얼어붙어 행인도 거의 없는 마당에 ... 마치 갑자기 십만 손님이 몰려와서 재미난 신간 주시오! 하고 달려들어 재고소진으로 고생하는 그런 망상이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흥, 미시마 유키오...”
그렇게 콧방귀를 뀌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럼요 그렇구 말구요. 그래도 이 문제적 작가의 또 다른 면모가 담긴 소설을 읽고 있으면 글쎄요. ’그렇지, 소설은 역시 오락이지!‘ 흡족하게 배를 두드리게 되고 소설의 주인은 독자들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독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만화경처럼 달라지는 건 소설의 내용뿐만이 아닐 거예요. 그 소설을 쓴, 소설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작자도 계속 달라지지 않을까요. 한편으로 역시 재미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게 느끼는 것이니 함부로 권하거나 추천할 수는 없다는 원론적인 자세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도 이상한 소설, 과격한 소설, 어지러운 소설, 엔터테이먼트 소설, 불편한 소설, 느린 소설, 장대한 소설 ... 고루고루 팔려라! 잘 팔려라! 매일 그렇게 주문을 외는 것이 소설책 파는 사람의 심정입니다. 신간을 입고할 때의 마음은 언제나 한결 같습니다. 아 어쩜 이렇게 재밌는 책이! 탄성이 절로 나올 책을 만나길 기다리는 것. 그런 책을 판매하는 것. 때로는 '아이고, 이렇게 중요한 책을 미처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회개하는 것. 그런 '회개'라면 수만 번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영하 8도의 서울에서 오늘도 신간을 입고하다가 정작 자기 책을 잔뜩 사버린 당신의 충실한 벗
추신: 『편지교실』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운전면허를 따는 데 애 먹고 있더군요. 운전면허 취득은 역시 어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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